연극 투명인간 - 내가 정말 보이지 않는 거니? 현 시대 아버지의 권위와 위치에 대한 재조명!?

 

  

손흥규 작가의 '투명인간'을 바탕으로 제작된 연극 '투명인간'은 2013년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쇼케이스로 20분간 보여졌던 연극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작은 대전 예술의 전당과 남산예술센터가 공동제작으로 진행이 되었구요. 투명인간 놀이를 하면서 진짜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가족의 이야기랍니다. 

 

 원작 작가 : 손홍규
197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소설집 『톰과 톰은 잤다.』『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장편소설 『이슬람정육점』『귀신의 시대』,『청년의사 장기려』 등이 있음. 오영수 문학상, 백신애 문학상 수상. 

연출 : 강량원 | 극단 동 대표 
강량원은 모스크바에서 연극연출을 공부했고, 스타니슬랍스키의 ‘신체행동법’을 한국의 문화와 연극, 신체에 알맞은 연기 메소드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1999년 극단 동 창단, 연출과 배우의 경계를 없애고 배우와 함께 분절된 신체 행동으로 언어를 만드는 작업을, 2008년 월요연기연구실 설립, 무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연기를 연구하고 있다. 2009년과 2011년 <테레즈 라캥>, <비밀경찰>이 서울아트마켓 팜스 초이스에 선정, 2012년 러시아 모스크바 사브리멘극장(컨템퍼러리 씨어터)과 크라스나야르스크 주 국제음악페스티벌에 초청 공연되었다. 

연출작품
2008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2009 테레즈라캥
2011 샘플054씨 외 3인
2011 상주국수집
2011 서울국제공연예술제 - 비밀경찰
2013 칼집 속의 아버지
2013 ~ 2014 나는 나의 아내다

 공연 줄거리
아버지의 마흔 여덟 번째 생일날이다. 어머니와 딸 그리고 주인공인 아들은 케이크를 앞에 두고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장난삼아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척하자는 제안을 한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자 세 사람은 재빨리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전등을 끈다. 그렇게 연극속의 연극이 농담처럼 시작된다. 아버지는 어둠속에 앉아 생일상을 기다리고 있는 식구들이 반갑다. 더구나 서프라이즈를 위해 투명인간 놀이를 하는 그들이 있어 행복하다. 그러나 세 사람은 금방 연극을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해도 묵묵부답이다. 급기야 아버지는 어머니를 포옹하고 어머니의 비명소리 속에서 그녀의 숨겨진 적대감을 발견한다. 어머니 또한 스스로가 남편을 그토록 거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는 서서히 지쳐가고 결국 의심하기 시작한다. “진짜로 내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닐까?” 보이지 않는다는 건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는 뜻. 뒤늦게 가족들은 놀이를 멈추려고 아버지를 찾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이제 아버지의 눈에 식구들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연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진짜 같고 완강하다. 아버지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집에 아무도 없어. 식구들이 사라졌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라며 울기 시작한다.

∎ 기획의도
놀이를 하다가 놀이와 현실의 경계를 넘어가버리다.
강량원 연출의 연극 <투명인간>은 처음에는 코믹하게 시작될 것이다. 아버지가 가족들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드는 걸 지켜보는 건 희극의 전형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진짜 투명인간이 되어버리면서 혼란스러워진다. 투명인간으로 가장하는 게 놀이의 규칙인데 진짜 투명인간이 되어버렸으니 놀이의 규칙이 깨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가장과 진짜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떠올려보라. 우린 종종 장난처럼 시작된 놀이를 하다가 깊게 빠져들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가. 그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치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진실이 드러난다.

∎ 출연진
아버지 투명인간 : 김석주 
어머니 : 김문희 
아들 : 강세웅 
딸 : 신소영 
배달원 : 이재호

제작진 
조연출 : 김유진/이은미 
무대디자인 : 박상봉 
조명디자인 : 최보윤 
안무 : 금배섭 
화술감독 : 유은숙 
드라마트루기 : 조만수/김주연


대사보다는 몸으로, 논리정연한 이해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느낌으로 받아드리기를 원하는 이 연극 투명인간은 사실 관객이 그 모션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즉, 너무 많은 해석을 관객에게 돌림으로 관객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공연 중에 하나 인 것이죠. 

 

저는 이 연극을 보면서 현 시대의 아버지의 권위와 위치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흔 여덟의 아버지, 하지만 딸은 아버지의 연세를 54세라 이야기 하고, 아들은 55세로, 어머니는 53세라 이야기 하죠. 가족들은 아버지의 나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뿐더러 작년의 생신에는 무엇을 했었는지 조차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하여 기억에 남는 생신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를 투명인간으로 대하는 투명인간 놀이를 시작하게 됩니다. 옛날에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일 일까요? 아버지를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는 놀이라니요! 아무리 프랜디를 외치는 요즘이라지만 이 상황 자체는 현시대의 씁쓸한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 놀이와 현재의 경계에서 현 시대의 가족을 넘어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와 소통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보이지 않는 것 처럼 대하는 가족들, 이를 멈추고 싶지만 가족들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 놀이에 아버지가 뛰어들어야 하는 것 뿐이지요. 물론 아버지 입장에서는 이를 계산하고 시작하지는 않습니다만, 자신이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인지 의심하는 가운데 이 놀이에 동참하여야 함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게 올바른 소통일까요. 아버지가 놀이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현실과 놀이의 구분은 모호해 집니다. 소통을 위한 참여였지만 결과는 소통의 단절을 가져오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전 연극을 통해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대하는 가족들을 멈추기 위해 한 행동 중 하나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습니다. 전화하여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찾습니다. 자신의 자식들이 존재함으로 본인의 위치가 만들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었죠. 또한 아버지의 놀이 참여가 시작되는 부분 중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TV를 보는 장면에서 아들의 손을 잡고 제자리 걸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벗어나려는 아들과 이를 잡고 있으려는 아버지. 결국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놓지만, 아버지는 그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손을 놓으면서 아버지의 놀이는 점점 더 절정을 향해 가게 되죠. 

 

마지막으로는 사람들에게 무인지되는 인격은 인격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놀이가 시작되면서 아버지는 생각합니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버지가 보는 자신의 모습은 본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자신이 자신이 아니라면 의자나 책상이나 냉장고처럼 이런 사물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 이 연극에서는 투명인간은 안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에너지의 소멸, 인식의 소멸, 존재의 소멸 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투명인간으로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연극을 보고 난 후 운이 좋게도 연출가 및 배우들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목원대와 한남대 연극연화과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했더라구요. 전 강량원 연출가를 직접 본 건 처음이었는데요. 너무 친절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ㅎㅎ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진행이 되었어요. 학생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아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하나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들으면서 어려웠던 이 연극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옷에 대한 해석을 이야기 하셨는데. 아버지의 옷이 아버지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셨습니다. 사실 가족과 아버지 사이에 아버지의 옷을 두고 실갱이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그 해석을 들으니 이해가 되더라구요. 



 

한 학생은 무대에 대한 질문을 했었습니다. 왜 철제로 공간을 나눴는지, 위에 걸려 있는 가구들과 옷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이에 대한 대답이 사실 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무대는 아파트를 연상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사실 사람들이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공간들에 이웃들의 삶 또한 이뤄지고 있음을 그리고 그 미지의 공간을 우리는 항상 곁에 두고 있음을 무대디자이너와 함께 표현하고자 했다 설명하시더라구요. 이는 또 다른 소통인 이웃과의 소통을 의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항상 서울에서 연극을 보아오다가 처음으로 대전에서 본 연극이었어요.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연극이어서 그런지 여운이 많이 남는 공연 중에 하나였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한번 보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